흐르는 강물! 2011. 8. 10. 22:41

 

 

승무(僧舞)조지훈

 

 

얇은 사(紗) 하이얀 고깔은
고이 접어서 나빌레라.

 

파르라니 깎은 머리
박사(薄紗) 고깔에 감추오고

 

두 볼에 흐르는 빛이
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.

 

빈 대(臺)에 황촉(黃燭)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
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

 

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
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.

 

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
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

 

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
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.

 

훠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
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

 

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(三更)인데
얇은 사(紗)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.

 

 

 

 

<청록집(靑綠集), 을유문화사, 1946>

 


 

승무는 승려의 옷차림을 하고 추는 춤이다. 시인은 이 춤에서 번뇌를 이겨 내고자 하는 종교적 구도(求道)의 모습을 보았다.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히 춤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춤으로 나타나는 마음 속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있다.
작품의 서두는 승무의 우아한 모습을 묘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. 승무를 추는 이는 젊은 사람이다. `두 볼에 흐르는 빛이 / 정작으로' 곱다는 것을 보건대 그는 여자인 듯하다. 꽃다운 나이의 젊은 여인이 승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. 그러나, 시인은 그가 어떤 이유로 속세를 버리고 승려가 되었는가는 말하지 않는다.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번뇌를 이기기 위하여 가다듬는 손길과 춤의 움직임이다.
춤의 시간은 아무도 없는 밤이다. 뜨락에 쓸쓸히 널린 오동잎 잎새마다 달빛이 비추는데 승무가 이루어진다. 그러므로 이 춤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뇌를 이겨 내기 위한 간절한 소망의 표현으로서 추어지는 것이다. 그 춤의 절정이 제6, 7연에 나타난다. 검은 눈동자를 살포시 들어 먼 하늘의 한 개 별빛을 바라보는 간절한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자. 흰 고깔 아래 보이는 고운 뺨은 어떤 우수를 머금은 듯하고, 맑은 두 눈에는 어쩌면 고뇌의 눈물이 아롱질 듯 여겨지기도 한다. 그러나 이미 세속의 세계를 떠나 모든 것에의 집착을 버리고자 한 터이기에 번뇌는 별빛처럼 아득히 멀리서 반짝인다. 그 다음 연에서 `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'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란 바로 이 별빛 같은 번뇌마저 떨쳐버리려는 간절한 심경의 표현이다.
작품의 서두와 마지막에 되풀이되는 `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'라는 구절은 이러한 내용과 더불어 음미할 때 이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.
[해설: 김흥규]